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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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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시인
2014년 08월 21일 08시 45분  조회:1662  추천:3  작성자: 림금산
 
신—네, 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시간에는 30년대 대표적 시인의 한사람이였던 오장환시인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역시 30년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가장 충실하게 노래한 대표적 시인 백석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많습니다.
남에는 정지용, 북에는 백석이라고할 정도로 국문학자들도 많이 거론한다는 시인 백석에 대해서 먼저 그의 생평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림--백석생애:

1. 어린 시절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이다.
백석은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서, 수원 백씨 17대손인 아버지 백시박과 단양 이씨인 모친 이봉우사이에서 3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백석이 태어난 평안북도 정주는 역사적으로 서양의 신문화가 일찍 들어온 곳, 문단사적으로 보면 이광수, 김억, 김소월등의 대가들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기도 하다.
백석은 7살이 되던 1918년에 오산소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13살이 되던 1924년에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8세가 되던 해에 오산고보를 졸업하였다. 말하자면 오산학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것은 그 학교의 교사로 우리 근대소설사의 선구자인 이광수가 부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또한 우리 근대시사의 앞자리에 놓이는 김억이 이 학교의 교사가 되어
역시 우리 근대시사의 유명 시인인 김소월을 이 학교에서 발굴하였다는 사실이다. 

2. 동경 유학 및 등단
백석은 가정형편상 진학을 하지못하고 1년간 집에서 머무르던 시절동안 그가 이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문학공부를 계속하여 다음해인 1930년 1월의 <조선일보> 신춘문예 공모에서 소설부문에서의 「그 母와 아들」로 당선.
백석은 두 편의 단편소설를 쓰고 세편의 외국소설을 번역함.
백석은 정주에서 금광으로 부자가된 계초 방응모의 후원에 힘입어 그 장학금으로 일본의
동경에 있는 청산학원 영문과에 입학하면서 영어 불어 러시아에 능통하게 됨.
1934년, 귀국 조선일보사 교정부에서 일하게된 백석은 산문창작활동에 중점을 두다가
1935년 8월 31일, 조선일보 지면에 「定州成」이라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시인활동을 시작함.

3. 첫 시집 <사슴> 발간 후 주목
1936년에 이르러 「사슴」이라는 제목의 첫 시집을 100부 간행하였다. 백석은 이 시집을 출간함으로써 일약 1930년대 한국 시단의 신예시인으로 그 자리를 확고하게 굳히며 많은 관심속에서 중요한 논의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한국 시사의 주목받는 시인으로 평가될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김기림, 박용철, 임화, 오장환 등이 백석의 시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들은 동시대의 이름있는 문인들로서 백석과 함께 당시의 문단을 만들어 나갔던 사람들이다.

4. 김자야와 만남
백석은 함흥에 머문 것은 그의 나이 25세부터 27세까지의 기간으로 이 기간 동안 백석은 그곳에서 김자야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이 김자야와의 만남은 3,4년에 불과한 일이었지만 백석의 생활과 그의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김자야에 의하여 그가 백석과 나누었던 사랑 이야기의 비밀이 「내 사랑 백석」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김자야가 밝힌 내용에 따르자면, 백석은 김자야와 실질적인 부부생활을 해가면서도 부모들의 권유와 강압에 못이겨 두번이나 봉건적인 중매결혼을 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때마다 백석은 결혼식만 치르고 뛰쳐나와 김자야에게로 달려왔다고 말한다.

5. 만주로 이주와 해방후 조선에 남음
일본 군국주의 통제가 심해지자 백석은 만주에 가서 관청에 다녔지만 창씨개명을 하라는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그 직장을 나와 측량보조원, 측량서기, 소작인생활 등을 하다가 단동의 세관에 근무하였다고 한다,
백석은 해방을 맞아 조선에 남았고1961년까지는 조선작가동맹에 문인으로 소속되어 조선작가동맹 기관지인 월간 <조선문학> 지에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었으나 그후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신—백석시인의 작품경향을 한두마디로 간단히 귀납해본다면 어떻게 말할수 있을가요?
1.평안도방언을 시어로 사용
2.우리의 토속적인 삶의 모습을 이야기시형태로 형상화
3.백석작품의 특색은 민속적 세계다.
그의 시는 향토맛 짙은 아름다운 방언의 보물고이고 우리 민족 토속적인 생활의 박물관이고 민속세계이다…
신—그럼 백석시인의 대표적 작품의 한수인 “모닥불”을 함께 감상해봅시다.
 
 
모닥불
 
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가락닢도 머리카락도 헌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늙은이도 더부살이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모닥불」전문

이 시의 첫연에 나오는 사물들은 생물, 무생물의 구분을 따로 나눌것없이 우리들의 유년체험과 친숙하게 맞닿아 있는 모닥불의 재료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요긴하고 쓸모있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거의 쓸모없게 되어 삶의 뒷전으로 물러나 있거나 아예 버려진 하찮은 사물들끼리 모여서 이처럼 따뜻한 모닥불의 광휘와 온기를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다. 1∼2연에 등장하는 각 낱말끝에 '∼도'라는 특수조사가 낱낱이 붙어있는것은 모닥불이라는 공간이 애틋한 소외존재들이 서로 만나는 평등한 장소임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시적장치로 여겨진다.
 
신—
백석의 시세계에서 또하나 돋보이는 것은 농촌적 정서를 아주 현장감이 느껴지도록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하던데요 다음에 감상할 시는 관서지방 농촌공동체의 여름, 저녁풍경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고 합니다. 함께 보시죠
 
박각시 오는 저녁
 
백석

당콩밥에 가지 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문을 휑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대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하늘에 별이 잔콩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오듯 하는 밤이 된다 ---「박각시 오는 저녁」 전문
 
림—해설:
박각시—박각시나방의 일종. 주락시나방의 일종—나비의 일종으로서 곤충의 일종이다.
바가지꽃-박꽃
돌우래, 팟중—곤충의 일종.
강낭밭—옥수수밭
주제: 자연속에 묻혀지내는 시골의 생활풍경을 시화한 작품.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작품.
 
백석과 금지시인들
 
1987년 『백석시전집』(창작과비평사)이 발간된 이후 백석의 시는 문학인에 대한 금지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조치인가를 그대로 일깨워 주었다. 동시에 백석의 문학에 대한 경탄과 더불어 백석처럼 그동안 금지라는 강제에 매몰되어 왔던 월북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봇물 터지듯 일거에 터져나오게 되었다.
 
전후 세대들의 상당수는 백석을 비롯한 이찬, 오장환, 임화, 이용악, 설정식, 정지용, 김기림, 박아지, 여상현, 조벽암, 조영출, 권환 등 많은 금지시인들의 작품은 물론 그들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아왔으며, 이런 분위기속에서 분단시대 남한의 문학인들은 개별적인 작품활동에 종사했다.
 
많은 신진문학연구가들에 의해 백석의 작품은 주요 단골연구 테마로 각광받고 있으며 전집 발간이후 가장 최근에 발간된『백석전집』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여편이 넘는 연구논문, 학위논문, 또는 평론들이 학계와 문단에 제출발표되었다. 이와 동시에 문단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전후세대 시인들에 의해 백석의 문학작품과 시정신은 깊은 영향의 수수관계로 재창조되어서 계승되어가고 있다.
 
신—백석시인은 동시대의 기타 시인들과 좀 다른 풍격으로 시를 쓴것같은데요 그렇다면 백석문학의 특징들은 어떤 면에서 어떻게 찾아볼수 있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림---백석문학의 특징:
 
상실되어가는 고향의식의 회복, 이를 통한 제국주의 문화의 극복,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따뜻한 긍정, 백석 특유의 방언주의와 북방정서 등으로 정리될수 있다. 백석의 시는 우선 문체상의 개성이 다른 시인들에 비해 매우 뚜렷하다. 그가 즐겨 쓰고 있는 방법들은 대개 회고체, 방언체, 구어체, 의고체, 연결체, 만연체, 아동 어투의 독백체 등이며, 이는 민중적 정서를 농도짙게 풍겨나게 하는 기대를 갖고서 구사된다. 시인 자신의 유소년 시절의 체험과 고향 정서로써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방법들이 어김없이 회고체를 채택하게 하는 것이며, 시인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지역의 방언이 그의 시작품의 방언적 토대가 되고 있다.
백석의 시는 형태면에서도 독특한 변별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시가 대체로 서사성을 담보하고 있는 사례가 많으므로 담시, 서술시, 이야기시의 형태로 자연스럽게 구체화된다. 한편 백석시의 특징적인 분위기 가운데는 이미지의 구사가 유난히 독특한 면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추억을 환기시키거나 토속적 분위기를 강렬하게 불러 일으킬때 주로 사용하는 이미지는 회고적 상상적 이미지이다. 이와 더불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다섯가지 감각 기관의 민감한 반응을 작용시켜 현장의 생동하는 느낌을 더욱 실감나게 고조시킨다. 군침이 돌거나 오줌냄새가 나거나…등
 
신-다음 역시 그의 대표적 시의 한수인 “동뇨부”를 함께 감상하고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뇨부(童尿賦)
 
                             백석
 
 봄철날 한종일내 노곤하니 벌불 장난을 한 날 밤이면 으례
히 싸개동당을 지나는데 잘망하니 누어 싸는 오줌이 넙적다
리를 흐르는 따근따근한 맛 자리에 펑하니 괴이는 척척한 맛
 
 첫여름 이른 저녁을 해치우고 인간들이 모두 터앞에 나와
서 물외포기에 당콩포기에 오줌을 주는 때 터앞에 밭마당에
샛길에 떠도는 오줌의 매캐한 재릿한 내음새
 
 긴긴 겨울밤 인간들이 모두 한잠이 들은 재밤중에 나 혼자
일어나서 머리맡 쥐발 같은 새끼요강에 한없이 누는 잘 매럽
던 오줌의 사르릉 쪼로록 하는 소리
 
 그리고 또 엄매의 말엔 내가 아직 굳은 밥을 모르던 때 살
갗 퍼런 막내고무가 잘도 받어 세수를 하였다는 내 오줌빛은
이슬같이 샛말갛기도 샛맑았다는 것이다
 
림—해설:
시「동뇨부」와 같은 경우는 1연의 '누어 싸는 오줌이 넓적다리를 흐르는 따끈따끈한 맛 자리에 펑하니 괴이는 척척한 맛'으로 표현된 촉각적 이미지, 2연의 '첫여름 이른 저녁 터앞에 밭마당에 샛길에 떠도는 오줌의 매캐한 재릿한 내음새'로 표현된 후각적 이미지, 3연의 '새끼오강에 한없이 누는 잘 매럽던 오줌의 사르릉 쪼로록 하는 소리'로 표현된 기발한 청각적 이미지, 4연의 '막내고무가 잘도 받어 세수를 하였다는 내 오줌빛은 이슬같이 샛말갛기도 샛맑았다는' 색채 형용의 이미지가 한 편의 시작품속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져 기이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시 「북관(北關)」에서 명태창란젓을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라는 후각적 이미지와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이라는 미각적 이미지로 연결 통합시키고 있는 부분들은 백석 시만의 독특한 방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신—다음은 백석시인이 중국 만주에 왔을때를 배경으로한 시 “북방에서”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방에서
 
                      백석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흥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
   나는 그때
   아모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츰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금은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여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한울로 땅으로―나의 태반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늘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림—해설:
1940년대 백석의 시는 자신의 삶과 문학에 대한 극심한 회의와 갈등을 보여준다. 일제 말기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자책감을 보여주는 시이다. 이 시의 화자는 백석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던 때부터 현재까지 살고 있으면서 민족의 역사와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 해온 역사적 화자이며 그의 삶은 역사 자체이다. 이 화자는 현재의 입장에서 자기가 살아온 삶과 역사를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가책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이 떠남의 밑바탕에는 "이기지 못할 슬픔", "시름"이 개재되어 있지만 화자는 그러한 시름이나 슬픔 없이 자신을 의지하고 살던 오로촌, 쏠론족과 산천과 거기에 사는 현실을 극복한다기 보다는 회피함으로써 일신의 안일을 추구하는 행위로 규정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또한 그 다음에 이어지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츰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는 구절은 떠남 이후의 그의 삶의 비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의 삶 전체가 그러한 비겁성으로 얼룩져 있으며 그로 인해 급기야는 더이상 피할수 없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고 그때에 와서야 슬픔을 안고 옛고향으로 찾아가지만 거기에는 조상도, 일가친척도, 자랑도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고백을 통해 일제 말기의 극한적인 상실감과 자신의 삶에 대한 가책과 슬픔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백석이 북방을 유랑하던 시절에 씌어진 것으로 그의 역사에 대한 가책을 보여주는 시이다. 특히 지난 과거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삼자의 입장이 아닌, 민족의 역사와 함께 살아오고 있는 화자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역사를 조상들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짊어지고 그 슬픔을 감당하려는 한 시인의 진실한 면모와 역사적 현실앞에서의 무력감과 가책을 잘 보여주는 시이다. 

신—백석시인은 어떤 소재와 제재로 시를 많이 씁니까? 소재 제재적 측면에 대해서 말씀주시죠?
 
림—백석의 시에서 다른 소재들에 비해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소재는 음식물과 관련된 사례들이다.
 
그의 시전집을 통틀어 음식물 소재는 대략 150여종이나 된다. 이 음식물들을 살펴 보면 우리의 토착적인 음식문화를 느끼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는 외래문화, 즉 제국주의적인 일본문화의 침탈을 시인이 의식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민족적 분위기가 강렬히 풍겨나는 토속음식들을 열거하고 집착을 보이기까지 했을것이다.

례: 막써레기, 돌나물김치, 백설기, 제비꼬리, 마타리,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물구지우림, 둥굴네우림, 도토리묵, 도토리범벅, 광살구, 찰복숭아, 잔디, 등 도합 148종이 넘는다.
이 음식물들의 종류를 가려뽑아서 보면 백석의 시에서 동원된 음식들이 모두 일반 서민들이 먹는 생활음식들의 명칭이라는 사실을 알수 있다. 이 가운데는 시골 아이들이 어릴적에 주워먹던 길바닥의 닭똥도 있고, 젓갈에 가자미식혜 등의 지역 음식도 보인다. 거의 대다수가 민중적 향취가 느껴지는 음식물들이며, 동물성보다는 식물성음식이 압도적으로 많은것도 특징이다.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동물과 식물의 구체적인 명칭도 상당수인바 야생동물, 가축, 물고기, 곤충 따위의 동물적 소재와 과수, 야생초, 약초, 해초, 채소, 과일, 곡식 등의 식물적 소재를 모두 추출하여 대비해보면 식물성이 약간 많다.
신--동물적 소재는 모두 72종이나 된다고 들었는데요.
림—네 지렝이, 박각시, 주락시, 개구리, 자벌기, 거미, 찰거머리, 버러지, 노랑나비, 벌, 딱장벌레, 파리떼, 노루, 곰, 멧도야지, 승냥이, 배암, 산토끼, 잔나비, 여우, 쪽재피,다람쥐, 도적괭이, 땅괭이, 호랑이, 당나귀, 오리, 개, 도적개, 얼럭소새끼, 도야지, 닭, 말, 토끼, 노새, 게사니, 소, 멧새, 물총새,
대부분의 동물들이 맹수류가 아니라 평화스러웁고 양순한 성질의 동물들이다. 이러한 동물들의 선택에서도 시인의 기질이나 품성을 엿볼수 있을것이다.
신—동물소재에 비해 식물적 소재들은 도합 79종이나 되는데 거의 모두가 시골생활에서 흔히 대할수 있는 것들이라지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네 돌나물, 제비꼬리, 마타리,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도토리, 살구나무, 찰복숭아, 배나무, 무이, 찹쌀, 왕밤, 천도복숭아, 콩가루, 섭구슬, 박, 감나무, 산뽕, 땅버들, 석류, 수리취, 송이버섯, 도라지꽃, 옥수수, 아카시아, 미역, 수무나무, 아주까리, 밤나무, 머루넝쿨, 재래종의 임금나무, 돌배, 벌배, 다래나무, 갈부던, 복사꽃,
이러한 식물들의 성격은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동물들의 이미지와 어울려서 작품 세계의 아늑하고 민중적인 삶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적어도 시작품속에서는 동물성과 식물성의 구별이 느껴지지 않는 합일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으로서의 백석은 천부적으로 참된 슬픔의 의미와 진정한 가치의 고귀함 등을 타고난 시인적 기질의 소유자라고 알고있습니다.
백석은 말합니다. '시인이란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 슬퍼할줄 아는 영혼을 지닌 사람'이다. 시인은 진실로 슬프고 근심스럽고, 괴로운 탓에 그속에서 즐거움의 참듯을 건진다.”  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아래에 백석시인이 슬퍼할줄 아는 령혼을 깊이 간직했음을 잘 보여주는 시 “여승”을 함께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승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 밤같이 차게 울었다

섭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픔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림-해설
여승—여자승려
기지취-산나물이름
금덤판—금전판-돈벌이간 곳
가을밤 같이 차게 울다—가을날의 밤열매같이 차갑게 울다
머리오리가 떨어진건—승려가 되려 머리를 깎았으니 머리가 떨어질밖에..
분석:
현재—내앞에 합장하고 선 여승
여인의 과거1-돈벌러 깊은 산에 간 남편
여인의 과거2-10년간 돌아오지않은 남편
과거 3-죽어서 돌무덤에 묻힌 어린 딸
과거 4-여성은 머리깎고 슬프게 여승이 되다
주제: 살아가기 힘들어 남편은 잃고 딸은 죽어가고 자기는 여승이 된 민초들의 고달픈 생을 시화한 작품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가엾은 생에 대한 남다른 동정과 관심과 애착을 볼수있으며 높은 슬픔이 있는 시인적 혼을 볼수 있다.
 
신--이 글속에서 백석이 말하는 '슬픈 정신'은 무엇이라고 이해해야 합니까?

아마도 세상과 뭇사물에 대한 크나큰 연민이 아닐까 한다. 모든 것을 다 내 마음속에 애틋하게 수용하고, 특히 모든 소외된 사물들에 대하여 따뜻한 가슴으로 끌어안으려는 불교적 자비심, 혹은 기독교적인 긍휼이나 사랑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높은 시름이 있고, 높은 슬픔이 있는 혼' '진실로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 '생명을 아끼는 마음' 등은 모름지기 시인이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필수 덕목이자 품성인 것이다. 백석의 시가 유난히 작고 가냘프고 여린 것, 외롭고 못난 사물과 가여운 생명들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과 애착을 가지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점에 있을 것이다. 잘나고 거만하고 자신을 뻐기는 존재나 화려한 사물들은 적어도 백석의 문학적 관심에서 일단 벗어나 있다.

신--다음으로는 백석의 시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유형과 그 성격에 대하여 말씀주시죠?
네 이것은 백석의 문학이 지니고 있는 지향과 가치관을 보다 확연히 꿰뚫어 알아볼수 있는 중요한 경험이다. 앞의 소재 탐구에서도 알아본 바 있거니와 백석의 시는 민중적 삶의 정서와 그 분위기를 환기하는 일에 혼신의 문학적 정열을 기울였다. 그것은 인물 유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거의 절대다수가 낮고 평범한 민중적 신분들이며, 하나같이 외롭고 쓸쓸하며 가난한 서민들이다. 시인이 굳이 이러한 인물들과 그들의 구체적 생활을 담으려 했던데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가장 다수의 사람들의 처지를 대변하며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위로하는 역할에 대한 자각을 분명히 갖고 있었던 듯하다. 친족집단이나 혹은 그와 유사한 방계집단을 중심인물로 등장시켜서 우리 모두가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던 민족이었음을 강력히 환기하고자 하는데도 그 목적이 있다.
특히 식민지시대의 제국주의 침탈과 문화적 유린속에서 민족의 주체성이 완전히 말살되어가는 위기에 직면하여 시인의 자기인식은 더욱 적극적으로 이러한 관심을 극대화시키도록 추동했을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이 점에서 동시대의 비평가 박용철이 누구보다도 먼저 시인 백석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정확하게 했던것 같다. 박용철은 백석의 시를 '전반적으로 침식받고 있는 조선어에 대한 혼혈작용앞에서 민족의 순수를 지키려는 의식적 반발의 표시'로 보았던 것이다.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 유형들은 몇몇 역사적 인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농민들이거나 중심에서 비켜난 주변적 인물 유형들임을 알수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남에게 고통과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호소하거나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게 자신의 일상적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민초들인 것이다.

시인 백석은 영문학을 공부한 일본유학생 출신이었지만 귀국후 그의 활동은 이처럼 민족언어를 통한 민족본체성의 유지와 확보를 위한 노력에 바쳤다. 그의 시는 단 한마디도 민족주체를 말하지 않았으나 동시대 어느 누구의 시보다도 더욱 진한 민족주체의 정신적 토양을 확고히 끌어안고 있었다. 그의 시에서는 1930년대 중후반에서 1940년대 초반까지의 황량한 시대를 배경으로 전형적인 한국인의 표상들이 그려져 있다.
 
 메기수염을 한 늙은 과일장수, 앓는 아버지를 위하여 약물을 받으며 오는 갸륵한 산골소년, 굿판에서 날이 시퍼런 작두를 타는 애처러운 애기무당, 민물고기를 잘 잡는 뻐드렁니 소년, 주막집에서 왁자지껄한 떠돌이 장사꾼들, '논두렁 개구리를 잡아서 구어먹는 소년들, 평안도의 어느 금광 입구에서 옥수수를 파는 한 여인의 슬픈 생애와 그 내력, 산골 여인숙에서 반들반들하게 기름때가 오른 목침을 베고 하루밤을 자고간 한없이 마음이 참담했던 식민지의 백성들, 일본인 순사의 집에서 서름구덩이로 식모살이를 하면서 손들이 거북등처럼 얼어터진 불쌍한 소녀 등등.
 
백석은 항상 힘없고 사는것이 어려우며 고통스러운 사람들편에 서서 그들의 삶의 아픔과 애환을 생생하게 그리고 정감이 감도는 필치로 그리려 하였고, 또 그것을 정감이 담뿍 감도는 필치로 그려서 보여주었다.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요즘같이 말이 타락할대로 타락해서 말이 지닌 본래의 질서, 본래의 기품이 현저히 상실되어버린 시대에 우리는 지난날 민족언어의 질서를 회복하려고 일제탄압에도 혼자서 안간힘을 쓰던 백석시인의 눈물겹고도 아름다웠던 시정신을 다시금 뜨겁게 가슴으로 느끼게 됩니다.
네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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